40여 년간 날카롭고 냉혹하게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爪角)’.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조각은 새삼스레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게 된다.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모든 것,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처음에는 읽는 게 너무 더뎠는데 중반 이후로 가면서부터는 엄청 후루룩 읽었다.
이전에는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를 읽었었는데 아가미나 파과 모두 특유의 문장력이 인상 깊었다.
최근에는 짤막한 문장들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쉼표 하나로 대여섯 줄씩 이어지는 문단들을 읽는 게 초반에는 좀 힘들어서 더뎠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의 소재는 어떻게 보면 크게 특별할 것은 없다.
60대 살인 청부 업자인 조각이라는 사람을 위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최근에는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지금의 상태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각이라는 사람만 봐도 그렇다.
나이가 들며 생기는 연민이라는 감정,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측은지심, 동정 같은 것들
물론 그런 감정들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는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문득 마주친 떠돌이 개 하나로도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르는 게 아니라 그저 옆에 있었다던 조각의 말은 어쩌면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옆에 있다는 것은 결국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고
그러니까, 자신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어떤 귀퉁이로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구절에서는 항상 어린 왕자의 여우가 생각난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마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그야말로 무용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으로 인해 삶이 굴러가고 있었다는 감각이 불현듯 끼칠 때가 있다.
여기에서의 투우는 조각에 대해 어떤 감정이었을지
나로서는 잘 가늠이 가지 않는다.
사랑과 비뚤어진 집착 언저리에 있다고만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면 시작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아직 나의 깊이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책으로 접하기에는 참 인상 깊은 관계였다.
조각의 류에 대한 마음이나 강박사에 대한 마음,
투우의 조각에 대한 마음,
조각의 무용에 대한 마음,
강박사의 아내에 대한 마음
전부 우리는 어떤 것에 마음을 두고 살고 있구나 싶은 책
읽기에 쉬운 글은 아니지만 문체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뒤부터는 술술 읽을 수 있으니
한 번쯤은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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